스물 두 번 째 마당- 동유럽의 향기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의 바냐루카 편 9/12-9/17) 보스니아 내전이라는 뉴스로 우리나라 TV에 자주 등장했던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로
향하는 배! 째라 부부의 발길이 두려움과 설레임에 종종 거린다. 과연 안전하게, 아무 근심 없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대로 다닐 수 있을까라는 의혹은 오직 매스미디어에 모든 정보를 의존하는 로자같은 보통사람들이 가지는 걱정이라 생각하면서...
아니나 다를까 국경을 넘는 곳에서 경찰이 먼저 여권을 수거하고 되돌려주었는데 카라를 오라고 호출한다. 아차! 무슨 일이 발생했구나 하는 불안감에 로자가 득달같이 달려갔다. 경찰 3-4명이 당황한 듯이 카라에게 북한에서 왔느냐고 영어로 서툴게 물어본다. 크로아티아의 벨리카고리차에서 이곳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바냐루카까지 남한 사람이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코리아라는 단어만 보고도 허둥지둥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로자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영어로 쏼라 쏼라 한다. 우리는 한국인이라고 다만 남쪽에 산다고... 근데 뭔 문제 있냐고?.... 미안한 듯 미소와 함께 여권을 되돌려 주면서 전혀...노 프로블렘이란다... 게임은 싱겁게 짧게 산뜻하게 마무리되었다. 국경을 넘었다고는하지만 한때는 같은 나라였던 곳이라서 거의 3-4시간이면 6개의 이웃 형제의 나라로 쉬이 넘나들 수 있다. 입국심사
하느라고 그렁저렁 놀며 쉬며 여유롭게 보냈지만 3시간 만에 도착한 이곳 바냐루카는 들판마다 옥수수가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하늘 향해 치솟고, 불그스레한 석양이 연상되는 듯한 색깔의 저층 아파트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는 평화로운 도시이다. 
우리를 초대한 에스페란티스토 미라는 법률가로 지난 8월 루마니아 SAT대회에서 만난 이후 자신의 나라로 여행해 줄 것을 강력히 희망했다. 보스니아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말하고 싶어서인지 우리 부부를 그녀의 고향 바냐루카에서 다시 만나자고 제안한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사람들이 고단하게 지내고 있지는 않을까? 먹고 사는데 그리 큰 지장은 없을까? 가난한 나라에 가서 한사람도 아닌 두 사람이 가서 식량을 축 내는 것은 큰 민폐가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은 하면서도 미라의 밝고 명랑했던 표정을 떠올리며 바냐루카의 팻말이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 무사히 내렸다. 그러나 미라는 보이지 않고 닮은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발견할 수 없는 코 큰 사람들만이 낯선 이방인의 등장에 일동 주목한다. 순간 당황... 뒤적뒤적 수첩을 꺼내고... 미라네 전화 번호를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찾고... 로자의 입은 십리만치 나오고... 로자 만한 배낭을 짊어진 카라의 이마에도 어느새 내 천자가 자연스레 그려지고...
잠시 후 우릴 태우고 온 버스 운전기사가 모든 상황을 알겠다는 듯이 다가오더니 자신의 핸드폰으로 미라네 집으로 전화를 걸어준다. 미라도 버스정류장에서 우리를 기다리다 지쳐 막 집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개인용 컴퓨터가 대중화 되지 않은 이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흔한 일이 생긴 것이다.
시내버스로 약10여분 만에 도착한 미라네 집은 2층짜리 우리나라의 빌라 같은 주택으로 그녀의 아버지가 바로 옆에 위치한 병원의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임대 받은 것을 그 후에 구매한 곳이다. 
우리가 머물게 될 방은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같은 특수 종이에 그려진 진귀한 미술작품들이 방안 벽 가득 걸려있고 호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온 각 나라의 인형과 조각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늑한 곳이었다. 동서양 예술의 향기에 흠뻑 젖어서 5박 6일간의 교양이 철철 넘치는 휴식을 이 방에서 취하게 되었다.
말없이 옅은 미소와 함께 우리를 맞아주신 미라의 어머니는 거실의자에 앉아 하루 종일 창밖만 내다본 채 일체의 외출을 안 하신다. 5년 전 아버지의 죽음 이후 외부의 나들이를 중지하고 사람들과 왕래도 거부한 채 지내신다고 한다. 그로인해 몸은 나날이 비대해지고 인정사정없는 비만의 결과는 온 몸 구석구석 통증을 유발하고, 우울증과 의욕상실의 악순환에 시달리고 계신 것이다. 배! 째라 부부의 철딱서니 없는 천방지축 에너지가 미라 어머니께 조금이라도 전해져 건강이 회복되시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첫 날을 보낸다. 고국에서의 불효자들이 타국에서 효도 좀 해보자고 두 손 맞잡고 결의하면서 먼저 쑥뜸과 침에 대하여 설명을 하기로 하였다. 흉터와 아픔 때문에 침과 쑥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은데 그것의 효능은 둘째 치고라도 과연 외국인이 한국의 전통 치료법을 수용할 지 그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이미 중국의학이 소개가 많이 되어 있어서 이곳 사람들은 동양 전통의학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다고 한다. 기침, 식욕부진과 허리. 엉치, 다리 등 온몸 구석구석 통증에 시달리는 미라 어머니께 족삼리와 곡지, 폐와 기관지들을 다스리는 폐유, 고황의 자리를 잡아드리기로 하였다. 침과 쑥뜸은 경혈자리만 잡아주면 누구나 손쉽게 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우리의 전통적인 의술이라고 하지만 대중화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김남수 선생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침술 강좌는 사람들로 미어터지고, 경동시장에서는 뜸쑥 구경하기도 힘들 정도의 선풍적인 인기와 함께 우리 앞에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침과 쑥뜸 한 두 번의 시술로도 미라 어머니는 엉치와 다리가 가벼워져 식사도 한층 즐겁게 하신다. 언제나 모녀지간이 밥 때만 되면 ‘ 조금 더 드시라고...먹고 싶지 않다고....’ 아웅다웅 싱갱이가 벌어져 미라가 속상해 죽겠다고 하소연 했었다. 거식증상 까지 보였던 그녀가 음식 더 달라고 부탁도 하고, 식사 중에도 카라만 보면 키스를 보내고, 손을 꼬옥 잡아주고, 발그스레한 홍조와 함께 담배도 거침없이 권한다. 흡연자들끼리의 동병상린이 침과 쑥뜸 몇 번 만에 국경을 넘는 인간애로 한층 더 승화되는 것 같다. 여동생 밀란은 생리불순과 불임의 고통 경험으로 침과 쑥뜸에 대해 대단한 신뢰를 보낸다. 거침없이 뽀얀 살결을 내보이며 자신도 침, 뜸 자리 잡아달라고 카라에게 부탁한다. 부지런하고 깔끔한 두 효녀는 자신들의 건강도 썩 좋지 않으면서도 오직 엄마의 건강을 염려한다.
덕분에 엄마의 절친한 친구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붙어나지를 않는다. 엄마의 안녕을 위해 항상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은 두 자매는 기꺼이 자신들의 노력과 수고로 엄마가 기운을 되찾는다면 더 할 수 없는 기쁨이라고 울먹인다.(심청이가 유럽에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에서도 외국인이 자신의 집에 머물 경우에 경찰서에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한다. 지난 불가리아 방문 때 경험했던 불쾌한 기억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지 않게 미라네 집을 나섰지만 친절한 경찰관과 더욱 간소한 절차는 이곳이 불가리아 보다는 민주화가 더욱 당겨진 사회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 걱정도 팔자인양 너무도 평화로운 도시 바냐루카에서 우리를 첫 맛에 반해버리게 한 음식이 있었다. 큰 파프리카 속에 감자, 버섯, 양파, 치즈 등을 다져 놓고 거기에다 밥도 담겨 있는 빠따라는 이곳의 전통 요리는 보기만 해도 눈이 달콤해진다. 마늘이 향긋하게 첨가 된 토마토소스가 코를 찌르면서 더 한층 식욕을 자극하여 단 한 숟갈 만에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아, 맛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다 획득하는 한마디로 예술 같은 진미이다. 세르비아 에스페란티스토 테레사 할머니의 큰 따님이 우리의 2박 3일 일정을 자신의 집에서 보내라고 해준 것만도 고마운데 빠따 비슷한 음식을 장만해 주어서 황홀한 점심을 한 적이 있었다. 약간 재료에 차이는 있지만 눈물이 나도록 맛있는 빠따는 한국에 돌아가면 제일먼저 해 먹고 싶은 성찬이다.
9월 14일 오후 6시에 약 20여명이 모인다는 바냐루카 에스페란토 ‘라 몬도’에 초대 되었다. 바냐루카 주정부가 이 지역의 아트갤러리를 무상임대 해준 아담한 장소에서 로자의 공연이 펼쳐졌다. 단 일곱 명이 모인 단촐한 자리였지만 일당 500 하는 마음으로 보내주는 정열적인 7인의 열렬한 박수소리와 환호성은 충분히 그들의 심정을 전해 받은 것 같아 로자 또한 서운하지 않다. 한 달 뒤에 치루어지는 총선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 못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한데 어우러진 그들의 진심을 충분히 느꼈기 때문이다.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제2의 도시인 바냐루카가 자랑하는 유적지 관광에 나섰다. 미라의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참혹했던 내전의 흔적을 보여주는 트브르챠바 성(TVRGXAVA KASTELO)벽에는 폭탄 맞아 문드러진 지붕이 그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성벽 밑으로 도도히 흐르는 바르바스 강은 시퍼렇게 멍든 그들의 가슴 속으로 끊임없이 치유의 약수를 흘려보내 주는 것처럼 보인다. 몇 년 전 엄마를 잃은 로자와 카라는 미라 엄마와의 시간이 너무도 행복한 나날이었다. 말은 안 통하지만 마치 오랜만에 엄마 젖을 만지고 있는 포근함으로 시간이 이대로 멈추어주길 바랬다. 그러나 어김없이 이별의 순간은 닥쳐오고 아무리 감추려 해도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다. 식욕도 의욕도 잃었던 미라 어머니께선 에스페란토를 배워서 우리와 자유로이 대화하고 싶다고, 내년 한번 더 와 달라고 우리의 손을 꼭 잡고 요청하신다. 엄마의 놀라운 변화에 미라도 기뻐 울고 카라와 로자도 울컥하고... 그저 말없이 그렁해진 눈물로 대답을 대신한다.
언제 또 다시 엄마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하늘의 천사를 대신해서 이 세상에 엄마를 보냈다는 신화가 아니더라도 엄마의 존재는 우리가 사는 삶의 이유이며, 증거이기에 엄마 없는 하늘아래 있는 가엾은 카라와 로자의 축 늘어진 발걸음이 쉽게 바냐루카를 떠나지 못한다.
어머니 부디 만수무강 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