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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6   살아있음에 살아야 한다!!
2009/12/29   매 맞고 싶어 안달이 난 여자의 속셈은?
2009/12/10   하찮은 만남에도 역사의 불가결성은 있다!!


살아있음에 살아야 한다!!
책 리뷰 | 2010/01/06 19:43
 

「수수밭으로 오세요」  공선옥 장편소설, 여성신문사


                              수수밭으로 오세요


         “수수밭으로 오세요” 는 제목으로만 보아서는 오직 소박하고 수수한 입맛 당기는 이야기만 한 가득 있을 것 같았다. 도시든 농촌이든 수수를 볼 기회도 없는 요즘에 더욱 향긋한 소식을 전해줄 것 만 같은 책이었다.


근데 웬걸! 1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식욕을 떨어뜨리는 구절이 있었으니, 주인공 강필순의 동생 필례의 말처럼 ‘공순이와 의사 선생의 풋사랑이야기’에는 밥맛없는 소식이 꽤 자주 등장한다. 자고로 먹물 먹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 나누는 사랑 놀음에는 한 순간의 욕망으로 뜨거운 몸뚱이만 있었지 될성부른 싸가지는 없었다. 


나도 먹물 먹은 인간에 속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심이섭(주인공 필순의 두 번째 남편)같은 무책임으로, 방관으로, 냉혹함으로 훌쩍 떠날 수 없는 비교적 따스한 정은 갖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싶다. 그런데 과연 필순이 처럼 어미의 위대한 모성을 발휘하는 실천적인 행위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역시나 심이섭이랑 똑같은 싸가지가 바가지에 불과할 것만 같다.


필순의 아이 한수와 산이, 친구의 자매 소정, 소란, 여동생 애인의 자식 봄이, 마치 고아원 보모처럼 졸지에 떠안게 된, 아니다 이런 단어를 갖다 붙이기에는 필순의 사랑이 너무 깊고 순수해서 가슴이 아린다. 어떠한 말로도, 나의 짧은 문장력으로는 표현해 내지 못할 미련한 이 여자, 아니 너무도 숭고한 강필순의 모성애는 여자이기 이전에, 누구의 사모님이고 아내이기 이전에, 그저 가슴이 시퍼렇도록 외로움에 지치고 말라버린 이 시대 빈민가의 여자이다.


그러나 사랑을 줄 줄 알고 지킬 줄 아는 그 따뜻한 인간애는 높고 깊은 정신세계와 의식을 갖고 있다. 비록 못 배우고, 가진 것이 없어서 천대받는 며느리로 인정도 못 받은 짧은 두 번째 결혼은 공순이와 의사라는 격에 맞지 않는 도전이었지만 시댁으로부터 돌아서서 나올 때는 보란 듯이 당당하게 선언하고 거부하고 나올 줄 아는, 없던 베짱도 만들어낸 여자이고 어미이다.


이런 아줌마의 깡다구가 없다면 어떻게 내 몸으로 난 자식들도 아닌 죽은 친구 오은자의 자녀들인 소정, 소란과 여동생 필례 애인의 아들 봄이를 차마 저버리지 못하고 눈물처럼 선물처럼 이 애들을 거두어 들 일 수 있을까? 그래서 숭고한 모성의 위대함은 아니 어미의 강인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친 우리에게 언제나 희망으로 기댈 진실한 감동을 준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존경받고 더 양심적으로 살아가려고 빈민가에서 봉사활동까지 자원했던 의사남편도 못 해 낸 것을 필순은 아주 간단하고도 단호하게 해낸다. 살아있는 생명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쌀 걱정 전기료 걱정에 잠 못드는 밤이 예전처럼 다시 돌아오겠지만 필순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어미의 암팡진 의지 앞에선 그것들은 이젠 슬픔도 고통도 아니다. 늘 언제까지 함께 있어주겠다는 큰 애 한수가 있어서, 의사남편 쏙 빼닮은 잘생긴 산이가 있어서, 친구의 아픈 흔적까지 간직하고 있는 소정, 소란이를 보면서, 몇 마디 말 말고는 고개만 끄덕이는 봄이를 보면서 필순은 모진 겨울을 이겨 나온 튼튼한 보리싹 처럼 이 아이들이 있기에 절망을 물리치고 새 희망으로 우릴 부른다.

“수수밭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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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맞고 싶어 안달이 난 여자의 속셈은?
책 리뷰 | 2009/12/29 22:02
 

매 맞고 싶어 안달이 난 여자의 속셈은?



‘하렘의 비극’   오헨리 단편선


                               오헨리 단편선

  대한민국에서 중 · 고등학교를 보낸 사람이라면 아마도 소설가 오헨리를 모르는 사람도, 또한 그의 명작 단편 ‘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을 듣거나 읽어보지 않은 소년 소녀도 흔치 않으리라.


정말 단편이란 말이 잘 어울리듯이 지하철 한 두 정거장 도착하기도 전에 오헨리의 단편 한 편 싸악 읽고 나면 새삼 두 골이 꽉 찬 뿌듯함이 밀려온다.


오헨리의 대표작은 위의 두 작품이 거의 전부인줄 알았는데 자잘한 즐거움과 사소한 공포가 넘치는 재기 발랄한 작품들(‘붉은 추장의 몸값’)이 많았다. 그의 전력(30대에 은행원으로 있을 때 공금횡령죄로 3년간 복역함)을 보니 그것 또한 한 편의 단편 소설감이었다. 그 감옥 속에서 비로소 소설 쓰기가 시작되었다고 하니 웃긴 비유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하렘의 비극’은 정말 어이없는 얘기이다. 매 맞고 싶어 안달이 난 여자의 이야기이므로 더욱 웃긴 작품이다. 밤새 실컷 얻어터진 댓가로 매일 매일  양손 가득 선물 꾸러미 자랑하려고 오는 아랫집 여자 때문에 온 몸이 근질거리는 여자가 남편에게 매 맞기 위한 전략을 짜내는 이야기이다.


남편에게 매일 밤 눈탱이가 밤탱이 되도록 맞고 나선 그 다음날 여우목도리, 오페라관람권, 여러 가지 선물 꾸러미로 아내 폭력에 대한 남편의 사탕발림으로 보상받아 즐거운 아랫집 여자는 경멸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적과의 동침을 자랑스럽게 지껄여대고, 최고의 날이 흠씬 두들겨 맞는 날이라는 아랫집 여자의 염장지름에 속으로는 마냥 부러운 우리의 주인공도 잿밥에 관심이 많아 매 맞아보려고 안달복달 한다.


복장도 긁고, 염장도 지르고, 심지어는 시비를 걸고 손짓 발짓 지랄 발광을 하여도 미동도 않는 남편에게  매 한 번 맞지 못해  호사스런 선물 한 꾸러미 받지 못해 슬픈 ‘하렘의 비극’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적과의 동침’과는 비슷한 느낌이지만 정반대의 대안을 제시한다. 허리띠에 맞으면서 살지라도 달콤한 당근을 원하는 ‘하렘의 비극’의 주인공에 비해,  비록 지금은 매 맞고 살지언정 나의 삶을 찾아가기 위해 주도면밀한 내일을 설계하는 ‘적과의 동침’의 주인공이 오늘을 사는 현대 여성들에겐 더욱 필요한 자세임엔 분명하다. 그러나 역발상으로 먼저 때리라고 내 몸을 먼저 던지는 것도 부부폭력을 예방하는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하는 짧은 생각을 ‘하렘의 비극’을 통해 상상해 본다.  그러다 더 맞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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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만남에도 역사의 불가결성은 있다!!
책 리뷰 | 2009/12/10 17:34

"하찮은 만남에도 역사의 불가결성은 있다."

<전작시 만인보1  고은 지음, 창작과 비평사, 1986>

만인보 1
글자 그대로 만 명의 사람들과 함께 걸어간다는 전작시  만인보는 시로 쓰는 인물사전이다.

해바라기의 화가 고호와 문둥이 시인 한하운을 동경했던 저자 고은의 본명은 고은태, 1933년 군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생의 환멸로 이어진 출가와 자살기도, 해방 전후와 전쟁 등 극심한 정체성의 혼돈과 갈등으로 파행적 일타행위를 일삼았던 걸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청년기의 방황은 1958년 조지훈 등의 천거로 현대시에 '폐결핵'으로 문단에 데뷔함으로써 일단락된다.

첫 시집 '피안감성'(1960)과 '신 언어의 마을'(1970) 등 초기시에서는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으로 노래한다. 그러나 1962년 환속, 1970년 삼선개헌 반대운동에 참여하면서 사회정치적 현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1974년 '문의 마을에 가서'를 발표한 이후부터는 어두운 시대상황과 맞물리면서 재야운동가로서, 현실 참여시인으로서 치열한 저항의식과 역사의식으로 시 세계가 바뀌어간다.

만인보 시리즈는 우리시대에 흔치 않은 연작 시집으로서 1986년 '만인보1'이 세상에 나온 이래 26권이나 나오기까지는 21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며 이 연작시집을 통하여 3000명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혼란스러웠던 80년대 벽두 남한산성 근처에 살면서 구상하였다는 만인보는 무지랭이 농투산이부터 일제시대 노동투사 강주룡, 역사속의 정여립까지 불러낸다. 시대와 인물을 종횡으로 아우르는 해원굿판을 펼쳐주는 오지랖이로 수많은 사람들의 소리를 찬찬이 듣게 해준다.  또한 만인보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단숨에 한 장의 시로 읽어낼 수 있는 알찬 전기문이면서 친근한 사투리와 운율이 아무나 흥얼거려도 될 편안한 노래이고 한 페이지의 자서전이다.

만인보1은 저자 고은의 어린 시절 기초 환경을 만들어준 100인에 대한 고백이다.

조부모, 부모 형제, 친가와 외가를 넘나들고 동네방네 사람들, 아버지 보다 더 좋았던 '엿장수 아저씨' 심지어는 '내시 처선', '고대 혜공', '곽낙원' 등 역사책 속에서나 보았음직한 인물들까지도 할 말 있다며 등장한다.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하지 못했던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단연 수 많은 인연 중 으뜸이다. 가갸거겨 글을 가르쳐주어 주룩주룩 책을 읽게 해주고, 자다깨어도 그대로 켜져 있는 불빛 같은 동네 아저씨이며 저자 고은의 어린세상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이다. 등짐장수 딱한 사정 듣고 세경 뚝 떼어서 돈을 꿔주는 배포 두둑한 의리파 사나이는 어린 마음에도 한없는 존경으로 닮고 싶은 인물이다.

인간사 진선미로 표현되는 것 자체가 위선일지도 모르는 '만인보1'의 주인공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없는 사람들이지만 역사의 불가결성은 하찮은 만남에도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

'만인보1'은 시인이 가장 맑은 눈동자로 바라다 본 어린 세상이었으며 닥쳐올 어두운 세상을 향해 내미는 부적과도 같은 액맥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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