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째라!! 부부의 인생2막 이야기
-집 팔고 아들도 버리고 떠난 세계배낭여행기(3)-
5. 다섯 번째 마당(2010년 5월 3~5일, 멜버른, 프란체스카와 베르니에의 집에서)
마르코와 니다의 염려 덕택으로 12시간의 비행 끝에 무사히 멜버 른에 도착했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섭씨35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몸부림을 쳤는데 멜버른의 기분좋은 쌀쌀한 날씨가 상쾌하기만 하다. 나는 열대지방 사람들은 게으르다고 별 생각없이 얘기를 해왔는데 더운 나라 와서 지내보니 게으르지 않고서는 견뎌낼 재간이 없음을 알았다.
태양이 열 받는 시간을 피해 새벽에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므로 아마도 늦잠꾸러기 나는 그들의 치열한 노동의 현장을 보지도 않고 지껄였으니. 아~ 입이 방정이여, 알지 못하면 입 다물고만 있어도 중간은 가리라. 이제 영어권 국가에 왔으니 모든 일들은 영어담당 내가 해야 할 차례이다. 철저히 영어를 거부하는 카라는 평등의 언어 에스페란토의 사용을 적극 권하지만 아직도 나는 영어를 잘 구사하고 싶은 소망을 갖고 있다.
에스페란토의 한계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영어의 광범위한 사용은 에스페란토를 능가한다고 믿기에 난 아직도 영어에 대한 짝사랑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들리는 말은 오직 쏘리, 탱규!! 뿐이니 어쩌면 좋아...
빨간색 스카이 버스를 타고 써든 크로스까지 가는데는 20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린 거기서 호주 에스페란티스토 프란체스카의 남자친구 베르니에를 만나기로 되어 있다.
프란체스카는 에스페란토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어서 그 친구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프란체스카와 베르니에는 약 60대 후반의 생기발랄한 청년같은 분들로서 항상 유머와 풍부한 표정 속에 서로에 대한 애정이 진함을 느끼게 한다.
부부는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은 14년 전에 SAT(무민족성 세계 협회)대회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단다. 도저히 노인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그들의 빛나는 눈동자와 목소리에는 삶과 이념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쉼 없이 공부하고, 노동하고, 토론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이 노연인의 멋진 삶은 나와 카라가 추구하는 삶과도 일맥상통한다.
베르니에와 멜버른 써든 크로스를 걸어나와 스펜서 스트리트에서 86번 버스를 타고 프란체스카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국으로 향했다.
약16여개의 소수민족 언어의 방송을 허용하는 3ZZZ라는 프로그램 속에 에스페란토가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프랑스 태생의 프란체스카는 10여년째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타악기 젬베를 배우고, 일본 무술 종류인 아이키도를 익히며, 아일랜드 춤을 즐기는 예술을 사랑하는 분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60대 후반의 할머니가 우리나라 2-30대 멋쟁이들이 즐겨입는 쫄쫄이(일종의 얇은 스니키 진)를 입고 그 위엔 풍성한 겨울 쉐타와 머플러를 두르는 센스이다. 오히려 귀여움마저 느끼게 하는 패션 감각은 그녀의 진보적인 생각과 조화를 이루며 멋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우아하게 멋있게 늙어가야 한다고 늘 다짐하는 내게 있어 프란체스카는 좋은 모델이 되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얇아지는 것이 비단 돈 지갑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열정까지도 포함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저 멀리 보이는 곳이 집이고 앞이 양봉 저장하는 곳 >
점심을 하얀 알랑미 쌀밥에 소고기와 호박, 당근, 양파 등이 푹 삶아진 스프에 신듯 하면서도 맛있는 짙은 초록의 피조이(혹은 파인애플 구아바라고도 함)를 뼈 발라 먹듯이 고아먹고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프란체스카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인터뷰와 함께 아리랑을 에스페란토로 소개하는 내용이 주로 진행되었다.
우리부부 호주 방문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가 우프(WWOOF: WILLING WORKERS ON ORGANIC FARM)체험을 하기 위해서이다. 공정한 교류(fairly exchange)를 모토로 삼는 우프는 현재 전 세계80여개 국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호주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 호주 1500여 개 우프 농장에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선진 유기농을 배우기 위해, 호주의 문화와 생활 등을 체험하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
우프 체험자들의 하루 3-5시간 노동과 우프 호스트들의 무료 숙박 제공이 공정하게 교환된다. 만 30세 미만의 청년들에게 호주의 워킹홀리데이가 영어와 돈을 버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우프는 청년 뿐만 아니라 중장년의 여행자들에게도 영어와 호주 생활 체험이라는 색다르고도 흥미진진한 기회를 제공해준다.

호주가서 캥거루를 만나지 못하고 오면 절름발이 여행을 했다고 한다. 호주의 상징인 캥거루가 산다는 처칠국립공원(Churchill National Park)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프란체스카의 집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이 공원에 야생 캥거루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캥거루 트랙을 따라 네 사람이 캥거루를 찾아 나섰다. 공원에 도착하기 전 까지는 캥거루가 우릴 향해 쌍수 들고 환영하러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녀석들 어디로 꽁꽁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네. 어렵쇼, 얘들 어디 간거야? 여기가 정녕 캥거루 나와바리란 말이지? 근데 코빼기도 안보이네...공원은 하늘만큼 땅만큼이나 넓디 넓은데... 어딜 가서 이 콧대 높은 녀석들을 만나지?...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대체 어딜 싸 돌아다니는건지..
우리가 요 녀석들을 찾아 애걸복걸 한번만 얼굴 좀 보자고 머리 숙이고 숨죽이고 가야하다니... 나 원참, 아니꼬아서리....그래도 꾹 참고 살금살금 찾아보아야 한다. 쥐꼬리 만한 정성이라도 들여야 요 녀석들이 ‘나 잡아봐라’하고 나타나줄지도 모르잖아. 앗싸! 드디어 발견, 옹기종기 모여서 저녁식사 당번 뽑기라도 하고 있었니?
낯선 침입자에 대한 경계심으로 두 눈은 땡글, 작은 두 귀는 쫑끗 세워서 모두 차렷 자세로 우릴 쳐다본다. 야~ 너 정말 귀엽게 생겼구나...어쩜 사진보다 실물이 더 예쁘니,,.어머머 엄마 뱃가죽에 담겨 있는 애기 캥거루 좀 봐...하하하...너무 너무 깜찍해...옥타브 하나가 올라간 신바람난 내 목소리에 캥거루 가족들이 놀래서 겅중겅중 도망간다. 야~야 니들 안 잡아 먹는다, 가지 마라....죽자 살자 도망가는 엉덩이 뒷 태가 또한 볼 만하네.... 참, 살다 살다 남의 똥꼬 보면서 좋아라 박수치며 웃는 것도 난생처음이네.
여기저기에 모여 있는 캥거루의 출현에 즐거워하며 돌아가야 할 시간도 잊고, 얼마남지 않았던 해도 이미 바다로 떨어지고, 새삼 시커먼 하늘을 인식한 순간 집으로 갈 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에이, 그래도 여기 오랫동안 살고계신 베르니에가 있는데 뭔 걱정이야? 베르니에를 앞장세우고 내려가는데 점점 앞에 계신 두 분의 모습이 검푸른 숲에 묻힌다. 배!째라 부부 두 손 꼭 잡고 열심히 쫓아 내려가보지만 택도 없다.
서걱서걱, 스슥스슥 나뭇잎 스치는 소리 음미 할 새도 없이 내려가다보니 프란체스카가 의심스럽다는 듯 여기가 올바른 출구냐고 자꾸 묻는다. ‘예스’ 한 마디에 더는 묻지 않고 말없이 내려가는데 캥거루트랙은 나오지 않고 아미트랙(army track) 팻말이 우릴 맞이한다. 정반대 방향으로 나온 것이다. 어둠을 헤치고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다. ‘영감탱이 땜시 난 몬산다~’
달콤 살벌한 프란체스카의 비난 한마디에 꼬랑지를 팍 내리고 고개는 푹 숙인 채 말없이 프란체스카에게 선두자리를 내주고 뒤따라가는 그 모습에 배! 째라 부부 뒤에서 얼마나 배꼽잡고 때굴때굴 웃었는지 아름다운 노연인은 알고 있을까? 아침마다 기운차게 장작을 패주는 베르니에를 우리끼리 비밀리에 돌쇠 형님으로 부르기로 하였다.
호주의 가을과 겨울을 책임지는 벽난로가 낭만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곳 거실에서 새벽서리 찬바람에 돌쇠형님으로부터 타작당한 나무들은 온 몸을 불태워 따뜻하게 온 집안을 감싸준다. 돌쇠와 마당쇠의 차이는 마당쇠는 마당 쓸고 장작패고 힘쓰는 일만 한다면 돌쇠는 노동하면서 넘치는 기운을 자랑도 하지만 마님방도 넘나들 수 있는 특권이 있는 것이다. 프란체스카 마님의 사랑과 정열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우리의 돌쇠형님 아마도 오늘 배게 머리에서 쥐어뜯기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네용.....
난생처음 본의 아닌 야간 산행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 방울 만큼이나 배! 째라 부부에게 오늘 하루도 포도알 같은 사연들이 대롱대롱 영글어가고 있었다.

6. 여섯 번째 마당(2010년 5월 6-7일, 캥거루야 미안해!!)
야간산행의 피로는 다음날 쾌종 시계 종소리도 듣지 못하게 하였다. 배! 째라 부부 타국에서 늦잠 자는 불상사는 막고자 세수 비누는 챙기지 못해도 귀가 따가우리 만큼 강렬한 소리의 작은 시계를 장만했다. 얼마나 고단했던지 커튼을 열어보니 해는 이미 한 낮을 향해 가고 있었다. 절대 서두르지 않고 일체의 피곤한 관광을 거부하기로 한 배! 째라 부부는 잠이 보약이라 위로하면서 느즈막한 아점을 준비하였다. 한국에서 사고 간 인스턴트 된장국과 컵라면으로 프란체스카를 제외한 세 사람의 점심식사가 이어졌다. 뭐든지 잘 먹는 우리 부부는 전혀 모르는 남들이 보면 하루 한 끼 끼니나 제대로 잇고 사는가 하는 형상으로 비교적 마른 체구를 가졌다.
그러나 우리는 아침마다 시원하게 나팔부는 방귀소리 만큼이나 우렁찬 비장과 위장을 간직하고 있는 전형적인 여행자의 체질이라 할 수 있다. 머리만 붙이면 코를 골고 불로 익혀지기만 하면 맛깔나게 먹을 줄 아는 배! 째라 부부 오늘은 캥거루 요리 풍미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쇠고기 같이 조금은 짙은 붉은색을 띠는 캥거루고기는 우량의 종만을 존속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호주 정부의 승인 아래 사냥과 판매가 허용되고 있다. ‘니들 안 잡아 먹는다’는 간밤의 약속은 송두리째 던져버리고 프란체스카네 정원의 싱싱한 알록달록 야채와 초록의 과실에 파묻힌 붉은 캥거루는 어느새 향긋한 음식이 되고 있었다.
미안해! 이걸 안 먹겠다고 거부하자니 열심히 우릴 위해 만들어 준 베르니에가 울 것이고, 먹자니 어여쁜 너희들 얼굴이 떠오르네, 이것 말고도 넘치는 먹거리를 두고 너희를 넘보는 우리를 용서해다오, 캥거루야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