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번째 마당-정열의 나라 스페인 (베니카심, 발렌시아 편 10/12-10/15) ‘시에스타’가 휩쓸고 간 인적이 드문 거리에는 상점도 문을 닫아걸고 조용히 잠에 빠진다. 마드리드 및 바르셀로나 같은 거대 도시는 이러한 풍습이 거의 사라졌다고 하지만 시에스타는 아직도 스페인 곳곳에서 유효한 아이스크림 같은 달콤한 휴식이다. 
알카라 데 씨베르트에서 버스로 30분 만에 후딱 도착한 베니카심(Benicasim)의
거리가 적막하다. 오후 1-3시 전후로 마법에 빠지는 시에스타는 한 여름 35도에서 거의 40도를 육박하는
살인적인 더위 때문에 생겨난 생존 방식이라 한다. 거리의 야자수가 고공행진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이곳도 열대성 기후가 대단한 곳이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새 파란 바다와 흰 눈같이 하얀 집들이 골목골목 서 있는 베니카심은 코마루자와는 또 다른 해변휴양지이다. 코마루자가 산책과 해수욕이 적절한 곳이라면 이곳 베니카심은 써핑(surfing)과 요트 및 조정 등, 좀 더 젊음의 열기를 발산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컴퓨터프로그래머이면서 에스페란티스토인 조안이 써핑 보드를 들고 바다에서 뛰어나와 우리를 반긴다. pasportaservo 2.0과 klaku.net 등 여타 많은 에스페란토 관련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또한 생태 환경보호 아나키스트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조안은 4년 전 세계 에스페란토 청년대회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 온 폴란드 출신의 카쉬아와 살고 있었다. 결혼은 생각 않고 심플하게 둘이 함께 하고 있다 한다. 서양의 또 다른 문화, 혼인과 상관없는 동거문화는 오직 서양의 독특한 풍습이라 하기에는 억지스런 면이 있지만 자타공인 결혼을 전제로 동거를 하는 우리의 풍속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또한 혼전 동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전혀 나쁘지가 않아서 쉬쉬 거리며 조심을 다해야 하는 우리의 혼전 동거생활하고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철저하게 아내와 동거인을 구분해서 소개하는 이들을 보면서 잠시 머물다 가는 로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면이 많았지만,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흉이 아닌 서양의 개인주의가 이런 동거문화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안네 집에서 걸어서 2시간이면 충분하다는 라스팔마스(Las Palmas)사막 정복에 나섰다. 급할 것 하나 없이 땡볕아래서 허리띠 질끈 동여매고 오직 물 한 병에 의지하여 구불구불 산등성이를 탄다. 사막이라고 해서 모래가 사방팔방 흩날리는 곳 인 줄 알았는데 지천에 널린 석류가 속을 빠알갛게 드러내며 한 입 먹고 가라고 유혹하는 희안한 곳이다. 
보이는 것이라곤 거대한 산과 자동차, 쭉 뻗은 도로, 힘내라 응원해주는 이름 모를 새들, 그리고 가끔 만나는 싸이클족들 뿐... 열혈 하이킹족 할배들이 힘들어서 인사도 못 받을 정도의 고공 산맥 도전을, 오직 두 다리에 의존하여 걸어가는 동양의 두 사람을 ‘독하다’하는 얼굴로 바라본다. 그냥 놀며 쉬며 룰루랄라 가는 것인데도 지나가는 차안에서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본다. 
잠시 길가 그늘에 퍼질러 앉아 김범수의 '보고 싶다'를 열창하며 고국에 두고 온 그리운 이들을 생각한다. 가까이 있을 때는 소중한 줄 몰랐던 수많은 분들이 오늘따라 더욱 보고 싶다. 이어서 '회심곡'으로 불효자의 변명을 담아보고, '금강산타령'으로 수려한 우리의 산하를 떠올려 본다. 구름마저도 잠시 쉬어 넘는 광활한 라스팔마스 사막은 젖과 꿀이 흐르는 파라다이스는 아니지만 거치른 들판에서 만나는 한 줄기 오아시스로서 대 자연이 선물하는 석류와 올리브, 선인장 등이 앞 다투어 서 있는 아름다운 사막이었다. 
명품 브랜드로 더욱 친근한 이름 발렌시아는 명장들의 빛나는 솜씨 못지않게 강의 범람을 막고 설치한 공원과 체육시설이 더욱 인상적이 곳이다. 예전에 시내를 관통하던 강의 흐름을 외곽 지역으로 돌려 만든 녹색의 터전에서는 한낮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스페인 전역으로 향하는 버스터미널 앞에서도 만날 수 있는 이곳은 고풍스런 발렌시아의 건축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초록의 장관을 만들어 낸다. 병원 부속 건물 성당(Iglesia de San Juan del Hospital)도 슈퍼(Central supermercado)마저도 석조예술의 세련미가 넘쳐흐르고, 발렌시아대학 (Universidad de Valencia)건물의 격조 높은 아름다움은 그 안에 앉아 있기만 해도 절로 공부가 잘 될 것 같다. 거기다가 렌페 기차역(Tourist-Info Valencia Renfe)의 생기발랄한 노랑색은 포근하게 여행자를 맞아준다. 
기차역 옆에 자리한 투우광장(Plaza de Toros)은 마치 이탈리아 콜로세움을 모방하여 만든 듯, 둥그렇게 그 안에 모여 앉아 성난 황소 약 올리며 그들만의 잔인한 리그를 펼치는 것 같다. 
맥주 한 병, 커피 한 잔도 모두 밖에서 해결하는 심플한 남녀 조안과 카쉬아가 강력 추천하여 쌩~하고 다녀온 발렌시아를 뒤로 하고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과연 마드리드에서는 어떤 일들이 전개 될지 잠시 숨어 있었던 두려움과 설레임이란 놈도 배! 째라 부부와 함께 냉큼 버스에 올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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