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번째 마당- 동유럽의 향기-옛 유고연방국가 (크로아티아의 벨리카고리차 편 9/10-9/12) 옛 유고 연방 국가 중의 하나인 크로아티아에 버스로 입국 할 시에는
모두 다 차에서 내려서 여권 심사를 받아야 한다. 무표정한
두 경찰관이 서로 분담해서 후딱후딱 일 처리했으면 좀 좋겠나
싶은데, 한 명은 열심히 업무 처리하는 것 같은데 또 한 명은
빈둥거리며 앉아 있는 것 같다. 비교적 간단하게 끝나는
과정이었지만 곤히 잠에 빠진 사람들을 내려라 다시 차에 올라가라
참 성가시게도 군다. 그러나 버스 기사가 2-3명 함께 승차하여 번갈아 가면서 운행해가는
배려는 바로 승객들에 대한 최상의 서비스로 느껴진다. 또한 우리가
방문했던 그 어느 휴게실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무료 화장실을
크로아티아에서 만났으니 여권심사의 불편함 쯤은 감수해도
무방할 것 같다. 가는 곳 마다 화폐를 바꾸어야 하는 불편함은 가뜩이나 산수에 약한
배! 째라 부부를 혼란에 빠뜨려 전혀 돈 계산을 못한다.
비싼지 싼지 점점 무신경해진다. 크로아티아의 화폐단위는
쿠나(kn)로 유로 가입국가로서 물가가 상당하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끼게 한다. 약 5시간이 소요되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까지 가는 버스 요금이 짐값 2개(150din)를
포함하여 6660din(세르비아돈)이다. 우선 돈 단위가 엄청 커짐과
동시에
우리 부부의 부담도 점점 커진다.
거대한 숲속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벨리카고리차(Velika Gorica)는 호주 방문 이후 가장 신록이
우거진 곳으로 로자가 다시 방문하고 싶은 제1의 도시이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트램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은 거의 모두가 크지 않은 아담한 2-3층 양옥집에 소박한
정원이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어서 어느 대문을 열고 들어가도
알록달록 예쁜 꽃들이 반겨 맞을 것 같은 곳이다. 꽃들의 세상에 온 것 같은 행복함을 안겨 주는 이곳에서
제8차 크로아티아 전국 에스페란토 대회가 열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에스페란티스토 스포멘카(Spomenka)의 친절한 배려로
참석을 하게 된 우리 부부는 그녀의 체계적인 계획과 관리로
벨리카고리차에서 안락하고 편안한 대회를 즐기게 되었다. 
약 20여 년 전 한국에 방문하여 만난 적이 있었던 그녀를 지금은
나이가 들어 버려 카라가 몰라 볼 정도로 변해 버렸지만 따뜻한
그녀의 환대와 마중으로 로자의 마음은 이미 그녀의 펜이
되어 버렸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에스페란티스토의 대화가
궁금해진다. 쉽게쉽게 선명한 발음으로 능숙하게 설명해주는
모습에서 이미 거목의 면모를 엿보게 한다. 저녁을 함께 하자고 초대한 에스페란티스토
스티페 무츠(Stipe Muic) 의 집에는 그의 노모와 아내, 아들이
모짜르트 심포니 제40번의 경쾌한 음악과 전통적인 폴란드,
크로아티아 음식을 준비하고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굵은 파프리카에 다진 마늘 및 다양한 향신료로 만들어진
폴란드 요리와 우리의 만두 같은 부드러운 양념속이 들어간 빵과
강력한 브랜드 등 풍성한 식탁이 우리를 향긋하게 맞아준다. 기술공업 교사로 은퇴한 그와 폴란드 출신의 아내, 컴퓨터
소프트엔지니어인 아들과 노모는 낯선 이방인들에게 최상의 배려와
친근함을 표하기 위해 당신의 침실도 거침없이 보여주고
베란다에 만들어진 아담한 카페, 많은 사연을 간직한 사진,
오밀조밀 조성된 정원을 자랑하기에 바쁘다. 그의 노모는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바냐루카에서 살다가 혹독한
내전으로 친구와 이웃들을 잃은 아픔을 울먹이며 전한다.
내전의 후유증이 모두의 가슴속에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강력한
통증을 동반한 바이러스가 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나중에 함께한 에스페란티스토 바요는 그의 아버지의 경우에
벌써 국적이 4번이나 바뀌는 말도 안되는 상황들을 비장하게
말한다. 그는 또한 슬로베니아의 어느 도시는 국적이 11번이나
변경된 사실을 말해주며 정치가 보통사람들에게는 백해무익한
시스템임을 증언한다. 56명이 참석한 크로아티아 전국 에스페란토 대회가 크로아티아의
애국가 제창으로 시작되었다. 향긋하고 부드러운 빵과 커피,
과일쥬스가 무료로 제공되는 가운데 등도 굽고, 허리도 구부러진
은백색의 노신사 숙녀들이 곱게 단장하고 등장하신다.
이곳 또한 우리 부부가 가장 젊은이 인 듯 한 상황이 연출되어
덩치 큰 어르신들 틈에서 귀여운(?) 동양의 얼라들이 되어 버렸다. 크로아티아 전국 에스페란토 대회는 오후2시에 아주 화끈하게
끝내버린다. 이번 대회의 주요 주제는 EU의 정체성과 언어에
대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민감한
주제이니 만큼 설왕설래 끝에 정치적인 해결 없이는 언어문제
또한 정답을 내리지 못하는 것으로 잠정 동의한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호텔 가르비(Hotel Garvi)에서 호사스런 점심을
마치고 이 지역 전통박물관으로 모두 향한다. 쭉쭉 빠진 싱싱한
비보이들이 한 바탕 놀고 난 후에 로자의 양반춤 공연이 이어진다.
길 가던 사람들이 신기한 듯 관람하고, 초롱초롱 아이들이 보내주는
호기심이 더해지는 가운데 신록이 우거지고 파란 하늘이 내려주는
신선한 기운을 받아 힘차게 부채를 펼친다. 
스포멘카의 배려와 건의로 한국에서 온 두 손님에 대한 극진한
대접은 참가비 및 일체의 모든 비용을 협회 차원에서 대신
지불해주었다. 이러한 호의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픈 로자는
부채 한번을 펼칠 때 마다 온 정성을 다해 사방팔방의 좋은
기운을 쓸어 담아와서 크로아티아 에스페란토계의 찬란한 부활을
기원하는 심정으로 춤 사위를 날린다. 대회 후에 이어진 관광은 ANDAUTONIA라고 불리는 유적지에서
펼쳐졌다. 전문적인 연극 연출가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이곳의 역사를
전업 배우들과 동네 사람들이 협력하여 극화시켜서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는 서비스는 정말로 참신했다. 마을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 우리 고을의 자랑거리를 함께 즐기고 소개하는 사례로서 문화
관광의 효과적이고 주민 주체적인 마케팅이 어떠해야 하는지
좋은 실례를 보여주는는 것 같다. 
여러 번 감격한 사실이지만 단지 에스페란티스토라는 이유 하나로
자신의 집 열쇠를 아무 조건 없이 건네주는 확고한 신의를
이 세상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놀랍도록 감동적인
신뢰와 믿음은 오직 에스페란토라는 평화의 언어만이 할 수 있는
커다란 무기임을 새삼 느끼면서 먼 이웃나라 할아버지로만 느꼈던
자멘호프 박사께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