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세 번 째 마당- 동유럽의 향기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사라예보, 모스타르 편 9/17-9/20) 
여행 5개월 만에 짐 값 하나를 줄이는 방법을 뒤 늦게 터득한 무 개념 부부는 새삼 희한한 것이라도 발견한 것 인 양 희희낙락이다. 아니, 긍께... 배낭 하나만 버스 짐칸에 맡기고 작은 것은 로자가 메고,
나머지 한 개도카라 등짝에 얹어 놓고 차에 올라 통로에 놓았다가, 빈 좌석 신세를 살짝 지면 될 것을... 아무 생각 없이 가방 두 개에 대한 비용을 꼬박꼬박 지불했으니...쯧쯧... 절로 탄식이 나오고 차돌 같은 머리를 박박 쥐어박고 싶다. 동유럽 여러 나라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짐칸에 맡기는 물건은 반드시 비용을 따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돈 단위가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머리가 나쁘면 손발 고생은 물론, 주머니에도 궁끼만 주렁주렁... 암튼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헤헤 거려 보지만 영 찜찜... 여행경비 한 푼 아껴 보려고 아점으로 한 끼, 하루에 딱 한번 식사다운 음식을 먹은 것이 몇 번인데 이렇게 아둔하고 바보 같을 수가...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는 1973년 우리나라의 탁구 국가대표 이에리사
선수가 세계대회우승의 낭보를 전해 주었던 기억속의 도시이다.
세계 제1차 대전의 발발지로도 각인되어 있는 사라예보를 거의 6시간 걸려 도착했다.
수도로 향하는 길이 왕복 딱 2차선, 불편한 만큼 산수가 수려한 경치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차창 밖을 내다보며 가노라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다. 동네 마을버스도 아닌데 맘씨 좋은 운전기사 아저씨는 세워 달라는 대로 다 정차 해주고.. 우편물도 맡아서 보관해주고... 기사 3명이서 번갈아 가며 느긋하게 운행한다. 이러다 언제 서울 간대유? 앞에서 레미콘이 느릿느릿 엉덩이를 흔들며 가도, 쥐방울만한 2인용 소형차가 알짱알짱 거려도 인상 한번 찡그리지 않고 그야말로 인내의 극치,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운전수는 추월은 물론, 빵빵 거리는 경적 한 차례도 울리지 않는다. (상상이 되나유? 절대 뻥 아님!) 1992-1995년 동안의 참혹한 내전에 부모형제 이웃을 잃고 고통의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지만 무뚝뚝한 표정처럼 보였던 그들이 화장실에 로자 혼자 유유히 다녀오는데도 웃으며 기다려 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너무 순박해서 당하고만 살았나 보다. 
안전벨트가 전혀 필요치 않을 만큼의 속도로 이 골목 저 골목 수화물도 전달하고, 잠시 짬 내서 담배 한 대 피고 오라고 알려도 주고, 장대한 발칸 산맥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서두르는 것이 없다. 너무 느긋해서 우리의 약속시간 7시에 도착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사라예보 에스페란토 협회 회장인 세나드가 발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을 생각에 맘은 급한데 덩치 큰 버스는 바쁠 것이 하나 없다는 듯이 거북이 운행을 한다. 
살루톤!(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죠? 한 두 시간 늦는 것은 다반사라서 저녁 7시 도착이라면 8시에 마중 나오면 된다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알려준다. 가난한 살림살이들 신세 지기가 미안해서 저렴하게 민박을 이틀밤 머무는 걸로 50유로에 구했다. 뜨거운 물과 넓은 주방, 햇빛 잘 드는 남향집을 골라 못다 했던 빨래도 하고 오랜만에 내 집 처럼 당당히(?) 주인의식을 가지고 청소도 하고, 보글보글 쌀밥에 구수한 누룽지도 끓이고, 귀한 생선 한 마리도 튀긴다. 밥 심 두둑!! 이제야 사라예보가 제대로 보인다. 수 백 년 전통의 자존심을 지켜가는 골목마다 빛나는 바닥돌이 투명 광택제를 칠한 것처럼 반들거린다. 옷깃이 부딪힐 정도로 줄줄이 이어지는 관광객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세상을 바꾸어 보자고 외치는 총선 후보자들의 유세 선전전이 가는 여름 햇살 못지않게 뜨겁다. 3년여의 내전의 아픔을 상기하는 조각품들이 폭발 현장에 전사자의 명단과 함께 부착되어 있다. 도심 번화가 한 가운데서는 돌아가신 영령들에 대한 추모의 불을 매일 밝히고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옆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마이클잭슨의 빌리진이 무참하게도 이 긴장을 깨버린다. 또 한쪽에서는 마돈나가 마치 자신이 천연기념물이나 되는 것처럼 ‘처녀처럼’ (Like a virgin) 순진을 떤다. 
동족살육의 비통한 역사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옛 유고 연방 6개국과는 여러 가지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하나의 민족으로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나, 종교 문제가 분쟁의 씨앗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옛 유고 연방 국가들은 한 민족, 하나의 언어는 아니지만 거의 이해 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종교가 내전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다만 부러운 것은 언제든지 버스타고 기차타고 국경을 넘어 예전의 형제국가들을 맘껏 드나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서로가 피해자라는 골 깊은 응어리가 풀리려면 아직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신 유고연방 부활을 외치며 등장한 전범 밀로세비치의 야욕은 인종청소라는 잔인한 동족살육의 참극을 불러왔고 한 독재자의 핏빛 야망으로 뿌려진 비극의 씨앗은 지금도 뽑히지 않는 잡초처럼 남아 순박한 민초들을 고통의 덩굴처럼 휘 감는다. 
많은 것을 잃게 한 전쟁이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의 싹은 자랐다.
사라예보의 어린이 12명이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에스페란티스토들의 도움으로 내전의 격화되던 그 기간에 3주 동안 안전하게 피신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9살이던 세나드 회장의 딸은 지금 어엿한 숙녀로 자라 유창한 에스페란토로 우리와 인사하고, 그 당시 함께 떠났던 소녀 중 한명은
카탈루냐 청년과 결혼하여 스페인에서 살고 있다 한다, 12명의 어린이 중 다른 한명의 아버지는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고위공직자로
재직 시, 에스페란토 행사 때 마다 물심양면 전폭적인 지원을 해줌으로써 그 은혜를 갚아 나갔다고 한다.
지금도 세나드 집 마당 한 구석에 자리 잡은 녹슨 화분은 전쟁 때 날아 온 3톤짜리 불발탄으로 만들어 진 것으로서, 모진 과거 다 잊으려 안간힘을 다해 오늘도 평화의 꽃을 피우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사라예보를 실컷 누리다가 또 다른 이슬람 문화가 묻어나는
모스타르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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