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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7   열여섯번째 마당-헝가리의 부타페스트, 데브레첸 7/27-7/30


열여섯번째 마당-헝가리의 부타페스트, 데브레첸 7/27-7/30
여행 | 2010/08/17 19:31

열여섯번째 마당

(동유럽의 향기-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와 데브레첸 편 7/27-7/30)

   6명이 마주앉아 함께 국경을 넘는 인터시티 기차가 굉음을 내면서
  도나우강을 건넌다. 다뉴브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이 강은
   헝가리, 루마니아, 체코 등 동유럽 여러 나라의 젖줄로서
  어머니 같이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나누어 준다.

  기차길옆을 따라 광대하게 펼쳐진 해바라기들이 작렬하는 태양아래
  고개를 숙이고, 새파랗게 서 있는 옥수수들도 타는 목마름으로
  수염을 산발한 채 힘겨운 여름나기를 하고 있다. 민가들과 이웃한
  공동묘지는 삶과 죽음이 바로 내 곁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우리에게는 공포와 기피 대상인 죽음의 상징물들이 마을 공원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오전9시 54분 브라티슬라바를 출발한 기차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시각은 낮 12시 40분. 두 사람이 32.40유로를
  지불한 기차 치고는 꽤 허름한 것이 프라하에 첫 발을 내딛은 후
  내 코를 떠나지 않았던 쉬야를 여기 저기 지려 놓은 듯 한 냄새를
  더욱 가까이서 느끼게 한다.

  거대한 위용과 건설의 망치소리가 드높은 부다페스트 역에서 제일
  먼저 마주친 KFC와 버거킹이 땡볕에서 고생하지 말고 어서
  들어오라고 우리를 유혹한다. 프라하, 브라티슬라바 등에서는
  에어컨이 작동하는 곳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냉방의
  달콤함에 젖어 있는 우리가 에어콘 없는 곳에서 더위를 견디기란
  참으로 힘든 고문이다.

  오래된 석조 건물 안에 앉아 있다 보면 시원해지기는 하지만 성질
  급히 뜨거움을 식히기에는 참고 기다리기가 어렵다. 가끔 새 건물에
  설치된 LG 에어콘이 유리창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지만
  아직은 대중화된 가전제품은 아닌 듯 하다.

  친절한 헝가리 두 여인의 핸드폰을 빌려 어렵게 에스페란티스토
  마르크스 가보로씨와 통화가 되었다. 우리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은
  혼자 살고 계신 60대 후반의 노인이라는 것뿐이다.

  하필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이 분을 택한 것은 외로이 살고 계신
  어르신에게 조금이라도 젊고 싱싱한 우리가 재롱이라도 떨면서
  귀여움 받으며 짧은 시간이라도 즐겁게 보내려는 생각에서이다.
  이미 호주에서 산드라 마님께 효도 미팅잔치를 펼친 경험을 살려
  한껏 만남의 기쁨을 전해드리려고....

  설마 저렇게 초라하고 거시기한 분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분이 KFC 창문을 열고 우리에게 성큼 성큼 다가온다.
  이마 가득 상하좌우로 낙서처럼 그려진 주름살하며, 목이 축 늘어진
  흰 티셔츠, 거기에다가 손에는 무언가가 담겨있는 듯한 꼬깃꼬깃한
  흰 비닐봉지를 꼭 쥐고 있었다.

  만사가 귀찮다는 듯한 표정과 산 만한 덩치에 비해 기운이 없는
  목소리만 듣고서는 우리가 아무래도 잘못 찾아온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오후5시 30분 시내에서 에스페란토 모임이
  이루어진다고 함께 가자고 요청한다. 다행이다 싶어 그를
  앞장세우고 태양을 피해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그의 뒷 태가 가관이다.

  두 손은 뒷짐을 진 듯 엉덩이에 걸친 싯누런 팬티 고무줄을 쥐어
  말고, 어깨는 삐딱선을 그린 듯이 오른쪽으로 쳐지고, 걸음을
  옮길 때 마다 언뜻언뜻 희어 멀건한 살결이 팬티사이로 삐져
  나오면서
배! 째라 부부를 웃음 짓게 한다.

    아니~ 이런 화끈한 팬 서비스를 우리만 즐겨도 되는 거야?

    ㅎㅎㅎ 처음 보는 분 뒤에서 몰래 히죽되며 웃어도 되나?

  세기의 명화 노틀담의 곱추 안소니 퀸을 닮은 성격파 배우 같은
  그 모습의 이면이 점점 궁금해진다. 혹시 집에 가면 우렁 각시
  같은 에스메랄다가 사랑하는 그를 위해 만찬을 차려놓고
  이제나 저제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종탑만큼이나 좁디좁은 곳에서 고래만한 등짝을 접고서
  새우잠을 자야하는 신세는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그에 대한 의문은 사그러질 줄을
  모른다.

  약 20여명의 남녀노소가 모이는 부타페스트 에스페란토 모임
  오늘의 주제는 유네스코가 제안한 세계 문화 다양성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서로 이해하고 상호 협력해나가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참석자 모두가 유창한 에스페란토로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데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모임의 토론을 주도하는 에바는 70대의 할머니로서 하얀 머리의
  빛나는 웨이브를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체크무늬의 주름치마가
  우아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백전노장 에스페란티스토였다.
  헝가리 에스페란토 라디오 방송국의 진행자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그녀의 발음은 선명하고 또박또박하여 듣는 귀를 편안하게 해준다.

  멀리 한국에서 온 우리의 문화가 궁금하다는 이들을 위해 즉석에서
  무반주로 아리랑, 진도아리랑으로 대답해주었다. 각 지방마다
  독특한 아리랑을 통하여 우리 민족은 기쁠 때나 슬플 때 이 노래를
  불렀다는 말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리스트와 현대 음악의 거장 바르톡,
  코다이를 배출한 헝가리는 민족음악가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영국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옛날 말을
  듣고, 어느 한 헝가리인은 리스트를 영국에다 인도, 그리고
  셰익스피어를 덤으로 줘도 바꾸지 않겠다고 잘라 말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자랑스런 음악가가 있던가?

   홍난파, 현제명 등 교과서의 스타들은 친일이란 오명으로 진정성을
  잃었고, 윤이상 같은 분은 혹독한 이념의 소용돌이에서 할퀴고
  찢기어져 그의 진면목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고....

  굽이굽이 한도 많고 사연도 많은 우리의 민족음악이여...

  시내 중심가에서 전철 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약 1시간정도
  걸린다는 그의 집으로 향한다. 헝가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살벌한
  전철, 버스 티켓 검사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전철 역 진입구에서
  건장한 남자들 3-4명이 도끼눈을 뜨고 표 검사를 철저히 한다.
  걸리면 90배라고 한다. 말도 글도 몰라 배! 째라고 했던
  프라하에서, 가끔씩 공짜 전철을 타고 다녔던 스릴을 이곳에선
  애초부터 차단시켜버린다.

  어둠을 헤치고 인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에 당도하니
  자그마한 성 같은 대저택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에이, 설마 저 집은 아니겠고...

     아니, 아니, 아니!! 바로 저 저 대저택이 마르크스네 집?

     콤프레네블레!(물론 저의 집입니다.)

     본베논!!(어서오세요.)

     머리는 머엉~ 입은 쩌억~

     오늘 하루 종일 설마가 사람 잡는다.

     마르크스는 헝가리의 명문 부다페스트대학 경제학 교수 출신으로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가는 이행기의 장단점을 파헤친
    그의 연구보고서들은 수차례의 강연을 통하여 전 세계에 알려졌다.
    중국과 일본 등에서 이미 자본주의 경제를 공부한 그는 헝가리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경제학 거물을 우린 이상망상한 할아버지로 생각했으니

    방정맞은 안목을 탓할 수 밖에...

    사람을 겉으로만 봐서 판단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진리를 새삼
    깨우치면서...

    그는 3년 동안 대저택을 혼자서 만들어나가는 프로젝트를
    매일매일  실행하고 있었다. 외관의 거대한 지붕과 기둥은
    전문가의 도움으로 진행하고, 실내의 오밀 조밀한 것들은 몸소
    자신의 손으로 한다는 원칙을 세웠단다. 지하1층 지상 2층에다
    방이 8개, 화장실이 4개, 주방이 4개 등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내부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의 침실에는 보석같은 아내와 딸이 사진 속에서 활짝 웃으며
  우릴 반겨준다. 몇 년 전에 상처를 한 그는 지금 혼자서 이 주택을
  원죄처럼 지으며, 카톨릭 교인들의 쉼터로 쓰여지기를 희망하면서
  오늘도 못질을 멈추지 않는다.

  정원에는 사과와 자두 등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지하창고에는
  3개월  정도 먹을 수 있는 양의 소세지와 빵을 얼음처럼 땡땡
  얼려놓고, 만일을 대비해 이렇게 준비해 놓고 있다는 그의 생각이
  이제는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반전과 놀라움으로 어안이 벙벙했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 아침
    우릴 위해 아침을 준비한 마르크스의 얼굴이 새삼 달리 보인다.
    잔뜩 찡그렸던 이마를 피고 웃음 띤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음성이 한층 생기가 돈다. 벌써 친해졌다고, 지하창고며,
    정원이며, 퇴비 만드는 방법이며, 마당에 세워져 있는
    남의 자동차 하며, 말문 터진 무당 마냥 술술술 잘도 나온다.

    알고 보니 부드러운 남자 마르크스는 우리가 생각지도 않았던
    부다페스트 시내 관광 안내를 자청하고 나섰다. 러시아로부터
    자치 독립한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부다와 페스트로
    나뉘어진다.

    부다 지역이 왕이 거주하는 기념비적인 건물들과 함께 있는
    곳이라면, 페스트는 대 자본의 현대적 미로 단장한 신식건물들이
    위치한 상업과 예술이 숨쉬는 곳이다. 네오고딕양식의 웅장한
    국회의사당 건물 앞에 걸려 있는 가운데 구멍 난 헝가리 국기는
    독립위해 피 흘린 영령들을 잊지 않기 위해 후손들이 헌정하는
    맹세의 표현이라고 한다.

    가는 곳마다 건설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 부다페스트의
    건축물들은 네오고딕, 네오로마네스크양식의  힘찬 느낌의
    남성적인 미가 물씬 풍기는 것들이 많았다. 프라하에서의 여성적인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과 건축물들이 거리를 메꾸었다면,
    부다페스트에서의 하늘을 찌를 듯한 용맹한 기상이 느껴지는
    건축물들은 헝가리 국민의 강인성을 엿보게 해준다.

     다만 아쉬운 것은 몇몇 유서깊은 건물들이 힐튼(Hilton)같은
     대자본에게 개발이란 이름아래 선뜻 내줘버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이나 아닌지 내 나라 일처럼 심히 걱정이다.

    뜨거운 태양도 마다 않고 강행군이 시작된 세 사람 시내 관광의
    백미는 어린이들이 함께 운영하는 기차역 방문이다.
    산으로 올라가는 기차 바퀴 중 가운데 하나를 거대한
    톱니바퀴 처럼 만들어 미끄러짐을 방지한다. 숲을 헤치고 덜컹덜컹
    올라가는 기차가 시원한 바람과 함께 재미를 선사한다.

    기관사와 전문 기술자를 제외한 모든 일꾼들이 어린이들로
    이루어진  이곳은 사회학습의 산 교육장으로서 여름과 겨울
    방학동안 아이들이 이곳에서 근무하고 월급을 받아간다.
    노동의 소중함도 알고 돈의 귀중함도 알게 해주어서 부모님들과
    아이들에게는 매우 인기 높은 일자리라고 한다.

    궁궐같은 대저택에서의 2박3일이 꿈결처럼 지나갔다.
    부다페스트 북쪽에 위치한 데브레첸으로 떠나야하는 발걸음이
    마르크스가 역전까지 동행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다.
    동유럽의 여러 나라 곳곳에서 영어도 완전먹통인 절박한 상황은
    많은 여행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 게다가 큰 도시의 역전에서
    조차 여행자들을 배려한 안내문이 그 나라의 모국어로 되어 있어서
    황당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7월 29일 목요일, 약2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도착한 데브레첸은
    조그만 역전이 말해주듯 작고 아담한 곳이었다.
    시내 곳곳에 분수와 벤취 등이 시민들에게 편안히 쉴 곳을
    제공하고,  도심 한 가운데는 오직 전차만 운행하면서 거주민들을
    매연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울창한 숲이 여기저기 우거지고
    아름다운 새들이 재잘되는 곳에서 우릴 초대한 에스페란티스토는
    이메르씨이다.

    이메일을 보내기가 무섭게 도착하는 답장으로 이미 높은 점수를
    따고 있는 그는 과연 어떤 분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가슴이 설렌다.
    전화 통화를 하고 나오는 카라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그의 어눌한 말투로 보아서는 많이 편찮으신 분 같다고....

    역전에서 가까운 그의 아파트 벨을 누르자 한참만에 문을 여는
    그의 모습은 병색이 완연한 분이셨다. 서 있기도, 거동도
    불편한 듯 우리에게 손짓으로 들어오라고 하는데,
    풍을 맞은 것처럼 언어장애와 함께 수족 장애도 있는 것 같았다.

    햇빛을 차단한 커튼을 제치고 우리를 안내한 방으로 들어선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겨우 세 사람이 들어서자 마자 꽉 찬 방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가지와 쓰레기, 거미줄, 악취를 더해주는 토끼 한 마리,
    돼지우리도 이보다는 나을꺼라는 생각에 그저 어이없어
    배! 째라 부부 연신 실실 거린다.

    여기서 이틀밤을 보내라고라고라고...(절대 못해! C..C..)

    어서 빨리 여기서 나가자고 연신 눈짓을 보내도 카라는

    못 본 척 이메르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도데체 이집의 여편네와 딸내미는 어떻게 생겨 먹은 인물들이길래
  집구석은 난지도 바닥이고, 병든 남편 버려둔 채 어딜 출장 중인지...

  욕설과 짜증이 한데 뒤섞여 앞뒤 분간이 잘 안된다.

  거리에서 노숙을 할 망정 죽어도 여기서 못 잔다고
  로자는 앙앙거리고...

  전직 컴퓨터 엔지니어와 도서관 사서를 지냈던 이메르는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면서 실직하여 병도 얻고 이 사회의 낙오자 처럼
  방구석에서 나오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녀의 아내 또한
   도서관 사서로써 매일 실직의 두려움에 떨며 산다고 한다.
  체제 전환의 과도기에 한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려 재기 불능에
  이르게 한 것 같았다.

  점점 밤은 깊어오고 이메르의 집으로 들어는 가야하고, 남의 나라
  길바닥 위에서 배! 째라 부부의 아웅다웅 말다툼은 그칠 줄을 모른다.

    어떻게 이런 곳으로 사람을 오게 할 수 있어?

    초대를 했으면 최소한 청소라도 해놓아야 되는 것 아냐?

    그곳이 사람 사는 곳 맞아?

    로자의 끝없는 잔소리에 카라가 한마디 한다.

    우린 단 하룻밤 현장 체험처럼 지내고 가지만...

    십여 년 저곳에서 천형처럼 헤어나오지 못해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정히 그러하다면 혼자 거리에서 노숙하라고...

   카라 혼자 저곳으로 들어가서 자겠노라고...(잘났어, 정말!)

    똥배짱 남편 덕에 거미줄 대충 걷어 내고, 여기 저기 날고 있는
    모기 소탕작전부터 펼치면서 잠을 청한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겨우 고양이 세수만 한 채...한 시간 정도 얼핏 잠이 들었을까
    싶은데 무언가가 내 목 위로 획 날라 간다.

    소스라쳐 놀라 깨어보니...

    아...여기가 이승이야 저승이야?

    새까맣게 꿈틀거리는 바퀴벌레들이 내 움직임에 놀라 도망가기에

    정신이 없다.

    뒤집혀져서 살려달라 바둥바둥대는 놈, 벽에 스멀스멀 올라가다
    미끄러져 떨어지는 놈, 카라의 허벅지에 달라붙어 있다가 놀라
    자빠지는 놈, 우리 여행 가방을 종횡무진 횡단하다
    추락하는 놈놈놈....

    헝가리 바퀴벌레 총 동문회를 오늘 저녁 이국적인 동양인 2명과
    함께 즐기자고 대대적인 광고라도 때린 듯...
    방바닥에 시커먼 윤기를 내뿜으며 그들만의 광란의 축제가 열기를
    더해가는 찰나였던 것이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하게 모여있는
    이 녀석들을 보면서 온 몸에 돋는 소름과 징그러움으로
    그저 엉엉 울고만 싶었다.

    우리를 초대한 분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잘난 남편 때문에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입술을 꼭 깨문 채

    시계야, 제발 빨리빨리 가달라고 빌고 또 빈다.

    악몽 같았던 바퀴벌레와 빈대와의 동침을 하루 만에
    끝내고(원래는 2박 할 예정) 나오면서 카라의 1박에 대한
    소감 한마디에 이메르가 힘겹게 거든다.

    자기 집이 그렇게 흉한 벌레가 많지는 않은 곳이라고...

   20여 년 동안 가스티기(에스페란토 사용자들에게 숙박제공)
   해왔지만 아무런 일이 없었다고...(그러니 유난떨지 말라는 듯이...)

    이메르의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공원에 앉아 바퀴벌레 흔적
    지우기 작업이 시작되었다. 카라가 메고 다니는 큰 배낭
    구석구석에 꼭꼭 숨었던 바퀴벌레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짐을 홀딱 뒤집어서 펼쳐놓을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는
    바퀴벌레의 끝이 보이지를 않는다.

    우리의 행동을 수상히 바라보는 주민들의 눈총에도 아랑곳 없이
    바퀴벌레와의 전쟁은 30분 동안 짐 하나하나를 까보고, 뒤집어도
    보고, 여기저기 훑어보고 나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아직도 카라의 엉덩이와 허벅지 16군데 빈대에 물린 선명한
    흔적은 지울 수 없는 데브레첸의 기념 선물로 남아있고,
    로자는 한동안 꿈속에서 조차 등장하는 바퀴벌레 떼의 출연으로
    검고 윤기 나는 것만 보아도 몸서리를 친다.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3박 4일 간의 헝가리의 여행은
    배! 째라 부부에게 있어 가장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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